THINKING/책

[책] 여행의 이유

BOTTLE6 2022. 9. 1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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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YES24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여행-일상-여행의 고리를 잇는, 아홉 개의 매혹적인 이야기『여행의 이유』는 작가 김영하가 처음 여행을 떠났던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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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길에 읽을 책을 찾아보다 수필 책을 꺼내보았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몇년 전 받은 이 책을 얼른 읽고, 누군가에게 전해줘야겠다는 숙제가 마음 속 한켠을 차지했는데
드디어 읽었습니다. 저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해 책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추방과 멀미>
p.18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p.21
'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층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p.41
방문을 열고 들어간 후배와 나는 깜짝 놀랐다. 기숙사 벽에 대형 미국 지도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
자기의 꿈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라고, 자기뿐 아니라 많은 중국의 대학생들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며, 토플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p.48
마오의 나라 중국에 가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겠다던 우리 둘의 생각은 '추구의 플롯'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외면적 목표'였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한 공식적인 이유. 프로도의 절대 반지 같은 것. 그렇다면 우리 둘에게 숨겨진 '내면적 목표'도 있었을 것이다.
...
우리로서는 여행 전에 이미 중국에 대한 희망을 버렸는지도 모른다.

p.51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p.60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오직 현재>
p.80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
자악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p.87
그러나 우리는 떠난다. 가서 거기 있고 싶어하고 직접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한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p.107
어떤 출연자는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
방송된 프로그램은 잘 분석하여 최선의 행동을 취하려고 한다. 실험실적 환경에서 변수를 통제하며 오염되지 않은 결과를 추구해왔던 출연자들은 아무래도 근대성에 기대 이 카프카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것 같았다.
반면 카프카의 관점을 따르는 출연자도 있다. 카프카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현대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것, 아니 그 목적지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보았다.
...
어차피 알 수 없다는 것. 많은 것들이 그저 우연으로 결정된다는 것. 이런 태도로는 불가능한 것을 통제하려는 충동은 줄일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
한 부류는 어떻게든 프로그램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이다.
...
또다른 부류는 바로 무조건적 믿음에 의탁하는 이들이다.
...
때로는 예측을 통해 결과를 통제하고 싶기도 했고, 그냥 제작을 전적으로 믿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p.113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자신의 선실 안에 머문다는 이 관념은 우리가 어떤 장소에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성찰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p.115
때로는 서울에 대해 책을 읽은 외국인이 나보다 더 정확하게 총체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알고 있을 때가 많다.

p.117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p.129
만약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림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그것을 잃었다면, ..., 남은 운명은 방랑자가 되는 것 뿐이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p.142
그는 분명 돈을 받고 나를 안내했지만, 그가 베푼 것도 일종의 환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의 가족을 만났고, 그가 믿는 신과 그 신이 사는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온전히 믿어야만 했다.
...
신뢰란 대담하면서도 아찔하고 탐욕스럽다.

p.147
나중에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갚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바디의 여행>
p.155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p.163
오디에우스가 위험을 자초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오디세우스의 허영심과 자만심이었다.
...
배가 채워지자 그의 마음 속에 다른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인정의 욕구, 낯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
다시 말해 언제나 섬바디였다. 그런데 이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p.168
타자를 향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느냐가 성숙한 여행의 관건이다.

p.183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행으로 돌아가다>
p.190
마사이 족으로 산다는 것은 삶이 항구적인 여행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우리들 대부분은 돌아올 지점이 어딘지를 분명히 알고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바뀔 수도 있다.
...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삶인 이들에게 여행이란 과연 무엇일까?

p.193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p.199
여행 역시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움직이지만 이주나 피난과는 다르다.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야 하는 이주자와 자기 결정에 따라 여행하는 자가 보는 풍경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성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p.207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